연성/FF14

[제노히카] 일단은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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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절은 파티원 대화 / 반절이 제노히카

+ 다음편은 미정






나무랄데 없이 깔끔한 패배. 제노스 예 갈부스, 황태자는 더할나위 없이 손쉽게 승리를 거머쥐고 돌아갔다. 이곳저곳에서 들려오는 부상병들의 앓는 소리, 감도는 죽음의 냄새. 알피노는 주변을 둘러보다 상처투성이로 바닥에 주저앉아있는 전사들에게 다가갔다. 이번에도 무엇도 도와주지 못했다. 무력감에 입술이 바짝 말랐다.

영웅이라 불러도 좋을, 네 명의 전사들. 그 중 한 명이 황태자에게 끌려갔다. 동료를 잃은 그들의 기분이 어떨지 짐작할 수 없지만, 알피노는 위로를 해주고 싶었다.


"왜, 어째서!"


브뤼아라디에가 비명을 지르듯 숨을 토해내며 앞으로 엎어졌다. 손톱을 세워 땅을 긁어대던 그가 안광을 형형히 빛내며 고개를 들어올렸다.


"나를 데려간 게 아니지?!"


동료 대신 자신을 데려갔으면 하는 건가. 알피노는 한 걸음 더 그들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나를 더 즐겁게 해줬으면 했는데!"


……응?


"그렇게 질척질척한 자기위안의 구애를 황태자라는 사람이 좋아하겠어요?"


볼란테의 말에 이를 악문 브뤼아라디에는 팽개쳐졌던 도끼를 들어올렸다. 핏물로 함뿍 젖어있는 도끼를 바라보던 그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하……. 그런가."

"기운내요. 우리의 목표는 그 자니까 다음에 또 맞붙을 수 있겠죠."

"좀 더 강해지면 그 녀석도 나랑 더 싸워주겠지?"

"글쎄요. 그렇지 않을까요?"


그들의 대화를 듣던 알피노가 말을 이해하기까지엔 몇분의 짧은 시간이 필요했고, 그러고서야 비명을 지르듯 말을 토해낼 수 있었다.


"도, 동료가 붙잡힌 건데 걱정도 안 되는 건가?!"

"그 녀석이라면 알아서 잘 하겠지."

"맞아요. 게다가 데려간 사람은 황태자잖아요? 제국 출신에 지위도 높다면 분명 화려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 사람이에요. 그런 사람이 데려간 거라구요."

"목숨을 담보로 잡고 협박이라도……"

"정말 그렇게 생각해요?"


알피노는 볼란테의 목소리에 잠시 고개를 숙였다. 마주쳤던 이가 내뱉었던 말들을 더듬어올리고 그의 지위까지 연관시키자 절로 고개가 저어졌다.

확실히 말도 안되는 이야기였다. 그들은 우리를 야만족이라 부르며 경시하는데 동료 하나를 붙잡아 협박하는 행위를 할 리 없었다. 말 그대로 그만한 가치가 없으니까.


"그, 그럼 왜 데려간 건가!"

"마음에 들었다던데."

"우리 중에서 가장 강한 건 그니까요. 싸우는 걸로 엄청 흥분하던데. 그 사람, 브뤼아라디에 과라구요."

"사람을 분류기로 쓰지 말지?"

"그래서 아니에요?"

"맞지. 그 녀석은 나와 동류야. 눈이 마주치는 순간 알았어. 아마 녀석도 알았을 걸? 내가 약해서 흥미가 식은 거겠지만."

"뭐, 그런거죠. 옆에 두고 흥을 돋우려는 그런 거 아니겠어요?"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으려니 머리가 욱신대며 아파왔다. 동료가 납치됐다기엔 정말로 너무 가벼운 어투. 그들은 정말로 깊게 생각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알피노는 시선을 돌려 여전히 땅을 바라보고 있는 칼랑코에를 보았다. 미동도 않고 바닥을 바라보던 칼랑코에는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가 깊은 생각을 할 리 없음에도.


"……칼랑코에, 왜 그러고 있나."


알피노의 목소리에 칼랑코에가 고개를 들어오렸다.


"형이……"


쉬어빠진 목소리. 슬퍼하는 목소리. 그가 슬퍼한다면 같이 슬퍼해주고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가득해, 알피노는 신경을 곤두세웠다. 칼랑코에가 간신히 입을 달싹여 말을 흘렸다.


"형이 없으면 이제 밥은 누가해?"

"……."

"……."


껄쩍지근한 침묵이 감돌았다. 볼란테와 브뤼아라디에는 가만히 칼랑코에를 보다 표정을 굳힌다. 심각한 분위기. 그들의 분위기를 따라갈 수 없는 건 알피노 뿐이었다.


"그러게요?"

"그러게?"

"요리 할 수 있는 사람?"


모두가 조용했다.


"역시 데리러 가는 수밖에 없겠군."

"데려와야겠어요."

"형이 해준 요리가 좋아."

"저도에요."

"평화를 원하거든 전쟁을 준비하라지?"

"그거 여기에 쓰는 말 아니에요, 브뤼아라디에."


무기를 쥔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전의에 불타고 있었고.


"……납치된 것보다 요리가 우선인가……."


허망한 알피노의 목소리는 바람에 스러졌다.



-



"일어나라."

"졸려."

"목구멍에 칼이라도 들어가면 잠이 깰텐가?"

"죽이지 않을 걸 아는데."

"방종하구나."


제노스는 침대 위 누워있는 남자를 보았다. 얼굴을 베개에 파묻은 채 느긋한 아침을 맞이하는 이에게선 어젯날 자신을 한껏 흥분시켰던 모습의 편린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날카롭게 짓쳐들어오던 손. 제 충격파를 디딤돌 삼아 가볍게 뛰어오르던 육신. 가벼운 몸과는 달리 그의 주먹은 묵직했다. 그와 힘을 겨루는 순간에 깨달은 단 한 가지의 명백한 사실.


호각지세.


그 날의 남자가 조금 더 진심으로 자신을 상대했다면 더욱 흥미로운 싸움을 이어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남자는, 정확히는 그 동료들 전부가 싸움 자체에 어떤 감정이 있는 건 아니었다. 일이니까 한다. 그 정도가 그들에게서 엿볼 수 있는 감정이었다.

도끼를 들고 있던 야만족만큼은 싸울 수록 흥미를 드러내는 것이 분명 자신과 동류임에 틀림 없었으나, 약했다. 그 야만족으로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었다.

우습게도 자신에게 흥미를 드러낸 야만족보다 흥미 없는 무감한 시선으로 주먹을 내뻗던 저 야만족이 자신을 가장 만족시켜준 이였다.


저 남자와 목숨을 내놓고 싸워보고 싶었다. 그의 시선이 오롯이 자신을 향하고, 그 시선 안에 가득 담긴 살기를 연료삼아 주먹을 든다면 그 자체로도 극상의 쾌락일 텐데.

그는 동료들이 쓰러지는 와중에도 무감했다. 동료들이 약점이 되지는 않을 터다. 남자가 자신을 향해 이를 세우려면 어떤 짓을 벌여야하지? 동료들에게조차 무감한 이가 모르는 이의 죽음을 신경쓸 리는 없고.


"무엇을 하면 진심으로 나와 싸울 거지?"


남자는 제 목소리에 시선을 돌렸다. 가늘어진 눈이 저를 훑는다. 선명한 초록에는 조금의 일렁임조차 없다.


"그렇게 싸우는 게 좋아?"


남자의 입에서 물음이 터졌고, 제노스는 가볍게 긍정했다. 남자의 고개가 기울어졌다.


"네게 싸움이란 게 뭔데?"

"즐기기 위한 것."


단언한다.


"살기 위해 이빨을 드러내는 건 짐승의 본성이다. 사냥을 즐기고 싸움에서 쾌락을 얻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지. 이 거칠고 무자비한 세상에 태어났다면 단 하나뿐인 목숨을 불태우며 싸움을 즐겨야하지 않겠나."

"아하."


남자가 웃었다.


"동격의 인간을 만나고 싶었구나."


침대 위에서 몸을 일으킨 남자는 가운을 벗고 바닥에 늘어놓은 옷가지를 집었다. 느긋하게 옷을 꿰어입고 무구인 건틀렛을 낀다. 철걱대는 금속의 소리가 감미롭게 귀를 울렸다.


"동등한 인간에게 죽고 싶다니, 로맨티스트인 걸."


눈매를 휘며 미소를 지은 남자가 손가락을 움직였다. 건틀렛이 제대로 착용된 것을 확인한 그는 고개를 까딱였다.


"싸워줄게. 대신 너도 내가 바라는 걸 들어줘."

"내 말을 잊었나? 목숨을 걸고 싸우고 싶다고 했다."

"들었어. 하지만 '무승부'가 될 수 있잖아?"

"……"


입꼬리가 씰룩였다.


"네가 죽음을 얼마나 바랐는지는 모르겠지만, 유희가 고작해 한 번인 건 아쉽지 않겠어?"

"하, 하하. 하하하하하!"


폐에 들어찬 숨을 전부 토해내는 것처럼 웃음에 숨이 찼다.


"그래, 그래! 그렇지!"

"그러니 '무승부'가 되었다면 내가 원하는 걸 들어줘. 나도 네가 원하는 걸 들어주잖아?"

"물론이다! 그럼 이리로 와라!"


싸운다면 그곳뿐이다. 등을 돌려 걸음을 빨리했다. 조급함에 숨이 터질 것 같았다. 어서 그와 무구를 맞대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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