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FF14

[제노히카] 일단은 2편


+ 히카센은 저희 집 히카센 중 그루(남휴런) :: http://hwang-junghyuk.tistory.com/99

+ 다음편은 제가 떡을 쓸 수 있을 때

+ 짧음

- 제노스의 말 때문에 덧붙여보는 건데, 짐승도 즐기려고 사냥을 하긴 합니다. 돌고래가 복어로 마약하는 것처럼 짐승들도 유흥을 즐깁니다. 글에서 나온 말이 전부 사실이라 믿으심 안 되므로 적어둡니다.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자, 남자는 자신보다는 정원에 시선을 둔 채 걷고 있었다. 봉오리를 틔운 꽃밭에선 짙은 향기가 나 이 주변을 온통 달짝지근한 냄새로 그득히 채우고 있었고 남자는 그것이 퍽 마음에 든 것 같았다. 입가에 은근한 미소를 걸친 채 주변을 둘러보는 남자의 걸음은 가벼웠다.

걸음을 멈췄고, 남자는 발걸음이 들리지 않고서야 자신에게 시선을 돌렸다. 제 앞까지 걸어온 남자의 얼굴은 고작 미소 하나밖에 걸쳐져 있지 않았으나 유쾌해 하고 있다는 것 하나는 명확히 느껴졌다.


"묏자리 한 번 낭만적인걸."

"그다지 내 취향은 아니지만 말이야."


제 취향의 장식물이 곧 놓일 예정이기는 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이곳에 없는 걸 굳이 입에 담을 필요는 없었고, 남자의 시선이 다른 곳으로 돌아가는 것은 그리 원하는 바가 아니었으므로.


"내 공중정원에 온 것을 환영한다."


남자가 지었을 웃음과 닮아있길 떠올리며 미소를 걸친 채 팔을 벌렸다.


"나를 즐겁게 해다오. 야만족의 전사여!"


철걱대며 무기가 돌아간다. 남자는 건틀렛을 쥔 손을 움직여 주먹을 쥐었고, 자신이 검을 뽑는 것과 동시에 쇄도해왔다. 금속과 금속이 맞부닥치는 날카로운 파열음. 손등으로 검을 흘려내며 안쪽으로 깊게 파고들어오는 몸짓. 남자의 얼굴에는 흥미가 동해있었다. 만족스런 서막이었다.







"만족했어?"

"하. 하하! 그래, 그래. 이거다. 이런 걸 원해왔었다!"


남자는 부러진 건틀렛을 벗으며 핏물진 손을 털었다. 건틀렛이 살에 파고들어 아플 법도 한데, 남자는 고통에 별 감흥이 없는지 살점이 달라붙은 건틀렛을 전부 벗어 땅에 버렸다. 우그러진 금속은 이제 쓰임새 없는 고철이 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의 칼 또한 마찬가지였다. 두 개의 칼은 부러졌고, 한 개의 칼은 온통 이가 나가 무뎌져 그 무엇도 베지 못할 터였다. 제대로 손질을 해도 몇 번의 휘두름 끝에 부러질 만큼 위태해진, 칼이라는 모양새의 고철.


더할나위 없이 깔끔한 무승부. 제노스는 폭소를 터뜨리며 바닥에 주저 앉았다. 이제 서있는 것조차 힘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와 동시에 남자도 바닥에 주저 앉았다. 꽃밭에 앉은 남자는 숨을 토해냈다.


"야만족의 전사여. 이름이 뭐지?"

"그루."


남자는 뺨을 가로지은 상처를 문지르며 인상을 썼다. 흥분이 가라앉고 나니 그제야 통증이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자신또한 별반 다르지 않은지라 몸뚱이 이곳저곳에서 올라오는 고통에 웃음을 터뜨렸다. 이 정도로 선명한 고통을 느껴보는 것이 얼마나 오랜만인지 남자는 모를 터였다.


"그래, 그루. 그루."


혀를 굴려 그의 이름을 굴려보다 입술을 혀로 핥았다. 둥그런 울림이 마음에 들었다.


"너라면 평생의 벗으로써 손색이 없다. 그러니."


숨을 들이키며 몸을 일으켰다. 싸움이 끝나고서야 알았다. 남자는 제 얼굴에는 조금의 손도 대지 않았다. 온몸 구석구석에서 올라오는 고통은 통각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부위를 가리지 않았다. 그런 통증이 얼굴에만 없다는 건 필히 뻔한 이유겠지.


"윌의 성씨를 주겠다."


야만족이니 내가 내뱉은 말이 어떤 뜻인지는 모를 테지. 그러나 상관 없다. 주는 건 형식적인 의미일 뿐이다. 묶어두기 위한 아주 단순하고 명확한 의미.

꽃밭을 짓밟고 남자의 앞에 섰다. 몸을 숙이자 남자는 익숙하게 팔을 뻗었다. 잡아 들어올리자 한품에 들어오는 작은 체구. 남자의 시선이 턱아래 머무르는 것이 선연히 느껴졌다. 무엇이 흥미에 동했는지. 시선을 내리자 상처투성이의 그가 눈꼬리를 휘며 웃었다.


"이제 네가 들어줄 차례지."

"무엇이던 말만 해라."


전부 들어줄 수 있으니. 남자는 여상스레 웃으며 입을 달싹였다. 남자는 손을 뻗어 제 머리칼을 쥐었고, 그대로 가벼이 쓸어내렸다. 부드러운 손놀림, 온통 피투성이인 손인지라 머리칼에 핏물이 졌다.


"섹스하자."

"……하?"


여상스런 남자의 목소리에는 떨림 하나 묻어나지 않았다. 외려 제 되물음이 이상하단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기울인다.


"내가 원하는 것을 들어주기로 했잖아."


눈매를 좁힌 그는 어쩐지 이 상황이 즐겁다는 듯 제 품에서 다리를 달랑달랑 흔들어댔다. 싫어? 그의 물음에 고개를 저었다. 싫은 건 아니었다. 그가 원하는 걸 들어줄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바라는 것이 고작 그것뿐인가?"


의외였을 뿐이다. 그가 야만족이기는 했어도 스스로 지금껏 바라마지 않던 자신과 동등한 이였고, 자신의 숨을 앗을 수 있는 자였다. 동등한 그라면 무엇을 원하던 전부 들어줄 수 있었다. 황태자의 지위가 그리 얕은 것은 아니었으니.


"그게 네 기갈을 채워주는 건가?"

"잉태하여 씨를 뿌리는 건 짐승의 본성이지. 아이를 배지 않는 행위에서 쾌락을 얻는 건 인간만이 가진 특권이고. 이 삭막하고 메마른 세상에 태어났다면 응당 가질 수 있는 쾌락이라면 누려줘야 하지 않겠어."


남자는 제가 했던 말을 비꼬며 힐쭉 웃었다. 까딱대던 발이 멎고 즐거움 그득한 시선으로 저를 올려다본다. 그가 바라던 것이 섹스였던 건 아니었다. 그저 제 흉내를 제 식대로 내었을 뿐.

폭소가 터졌다. 몸이 들썩였다. 그가 하는 말 한 마디조차 놓치고 싶지 않을 지경이었다. 유쾌함이 몸 전체를 잠식했고 그 뒤를 이어 질척한 것이 따랐다. 형식적이었던 단어가 이제는 그저 형식으로써 남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도 지쳤으니까 내일. 알았다. 지친 것은 같았기에 긍정은 빨랐다.


"치료부터 하지, 그루 윌."


둥그런 단어 앞에 둥그런 단어가 붙었다. 혀로 굴리는 발음이 마음에 들어 입을 다문 채 혀를 움직였다. 정말로 마음에 드는 단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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