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FF14

[오르그루] 몽정


  벼락 맞은 것 마냥 눈을 떴다. 아직도 몸이 떨리고 있다. 돋아난 소름. 느리게 호흡하며 어떻게든 떨리는 몸을 진정시키려 애써보지만 도무지 쉽게 가라앉질 않았다. 악몽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좋은 꿈도 아니었다. 척추를 타고 흐르는 것은 좋다, 나쁘다로 구분짓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다.

  아직도 어스름히 머릿속에 남아있다. 자신은 그의 목덜미를 물었고, 그 살을 거칠게 휘잡으며 추한 몰골로 그를 탐했다. 짐승들의 교합도 꿈에서의 나보단 나으리라.

  내음은 없었다. 그 얼굴도 뿌옇게 남아 흐렸고 선명한 건 눈가의 점 하나뿐이다. 그가 눈물을 흘렸던가. 일어나면서 흩어진 기억들이 야속하게만 느껴졌다. 육체는 어떠했는가, 표정은 어땠지? 목소리는? 그 어느 것 하나 어렴풋하기만 하고 제대로 남는 것이 없다. 마치 손 위에 닿아 녹아버린 눈처럼.

  이불을 끌어당겼다. 달아올랐던 몸이 순식간에 식어버린 탓에 싸늘해진 탓이다. 땀으로 흠뻑 젖은 몸뚱이에 찬바람이 닿아 시렸다. 벽난로의 화톳불도 사그라들은지 오래인 듯, 방 안에 따스함은 조금도 없다. 아니, 한 군데 있다. 이불 속. 아직 빠져나가지 못한 열기가 허리께에 머물고 있다.

  바지가 축축했다. 꿈속에서 싸지른 정액은 현실로도 이어져 있었다. 스스로의 꼴이 우스웠다. 몽정이라니. 자신은 그런 금수만도 못한 교미를 바랐던가. 내제된 욕망이란 그리도 추한 것이던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메마른 손은 거칠었다. 손가락 틈으로 한숨이 흘렀다. 다시, 조금만 더 자자. 수마에 대한 욕망은 꿈에 대한 욕망은 아닐 것이다.




  

  그의 육신은 꿈이라는 매개를 통해 자신에게 다가왔다. 꿈이란 것이 으레 그렇듯 원치 않는다고 꾸지 않는 것이 아니었기에 꿈을 꿀 때엔 늘 자신의 욕망을 마주해야했다. 더럽고 역겨운, 구토감이 치미는 그런 욕망을. 처음엔 불편했다. 외면할 수 없어 괴로웠다. 그러나 익숙해짐이란 무서운 것이라, 무뎌지고 나니 외려 더욱 원하고 있는 자신이 있었다.

  흐릿한 잔상은 현실의 그를 마주하면 조금씩 또렷해졌다. 감촉이 점차 선명해지고 그의 얼굴도 선명해졌다. 휘어지는 입술. 맞닿는 온기. 끈적해지는 신음과 거칠어지는 교미. 그 욕망을 직시하니 더 바라고 만다. 깊어지길, 더욱 선명해지길. 그러나 꿈이란 것이 원치 않는다고 꾸지 않는 것이 아니 듯, 원한다고 꿀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 어쩌겠는가. 더욱 자주 꾸도록 유도할 수밖에.

  오늘도 그러했다. 정신이 몽롱했다. 벌써 일주일간 계속 이 애매한 상태가 이어졌다. 이런 정신으론 일이 손에 잡힐 리 없었고 제대로 처리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러나 이 상태를 고집하고 마는 것은 결국 욕망 탓이다. 꿈에서라도 그를 탐하길 원하는 욕망.

  머리가 아팠다. 기어코 하인 중 한 명이 쉬라며 방에 감금하는 사태까지 발생했다. 푹 잠들라며 향까지 피웠다. 달큰한 향이 수마로 이끌었다. 방 안은 향으로 가득했고 머리속은 아찔했다. 생각이라는 게 너무 뻑뻑했다. 오늘은 푹 잘까. 아무 생각 없이 잠들어본 지 얼마나 됐는지. 후, 낮은 웃음과 함께 침대에 누웠다. 그래, 자자. 오늘 하루만 욕망을 잠시 묶어두자. 결심이 어려웠을 뿐 실행은 쉬웠다. 아니, 쉬울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몰려있었으므로. 나른한 하품. 시야가 온통 흑으로 가득 찼다.





  그가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시야가 뿌연 것으로 꿈임을 깨달았다. 그 무수한 꿈 중, 꿈임을 자각했던 것이 아예 없던 것도 아니었으므로 금세 납득하며 몸을 일으켰다. 그의 얼굴이 흐려 어떤 표정인지 잘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뭐 어떤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이다.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중요한 건 그가 자신의 바로 앞에 존재한다는 것이다.

  손을 뻗었다. 선명한 감각과 선명한 감촉. 시릴 정도의 차가움이 손을 타고 전해졌다. 그의 몸뚱이에 닿은 팔이 얼어 떨어질 만큼 차가워 놀랐으나 그것도 잠시였다. 어차피 곧 뜨거워질 테니. 잡아당기면 끌려온 그의 얼굴에 입을 맞췄다. 콧잔등에서 미끄러진 입술이 그의 입에 닿았다. 흐린 얼굴 사이에서 그의 눈이 보였다. 놀란 듯 조금 홉떠진 눈. 그 초록이 뇌를 강타했다.

  익숙하게 그의 몸을 더듬었다. 자신의 뜨거운 손에 그의 찬 육체가 점차 미지근해져간다. 이를 세워 그의 입술을 짓씹으며 익숙하게 옷을 벗겼다. 역시 자네는 벗고 있을 때가 예쁘군. 속삭이며 하반신을 부닥친다. 그의 웃음소리가 귀에 머물렀다. 무언가 말을 하는 것처럼 입을 뻐끔거리는데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어스름한 목소리. 그가 제게 손을 뻗었다. 다리를 벌렸다. 그것으로 이제 토해낼 시간임을 알았다.

  추잡한 욕망을 그에게 쏟아낼 시간이다.




떡쳤겠죠




  머리가 맑았다. 오랜만에 맞이하는 맑음이 당황스러웠다. 여전히 꿈의 감촉이 선명한데 이다지도 개운한 기상이라니. 하반신이 질척했고 손도 쾌락으로 여즉 떨리고 있었다. 그래, 뭐 나쁘지 않겠지. 밀린 일들을 처리해야겠노라 생각하며 몸을 일으키려는데 허리를 무언가 억누르고 있었다.


  "……추워. 이불 가져가지마……"


  귀에 닿는 목소리에 몸을 크게 움질이곤 느리게 고개를 숙였다. 핏기가 가시는 것이 온몸에서 느껴졌다. 몸을 감돌던 열기가 순식간에 빠져 추워졌다. 그리고 그 아래에 자리하고 있던 게 그루라는 것을 확인한 순간엔 기어코 앓는 소리가 목에서 들끓었다. 방금의 개운함은 온데간데 없고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왔다.

  꿈이 아니었다고?

  나는 그렇다면.

  그를?

  생각이 드문드문 끊긴다. 무엇을 말해야할 지 갈피도 채 잡지 못한 채 그의 몸을 훑었다. 자신이 남긴 흔적들이 고스란이 그 육체에 있었다. 다행이라고 해야할 건, 그나마 부러진 곳이나 큰 상해는 없어보인다는 것이다. 추잡한 욕망이 기어코 수마에 이기지 못한 덕이리라. 어쩌면, 그가 자신을 제지한 것일 수도 있다.

  그가 느리게 자신에게 달라붙었다. 이불이 제대로 덮이지 않은 탓에 인상마저 쓰고 있다. 황급히 이불을 덮어주자 찌푸려졌던 표정이 조금 가라앉았다. 그가 느리게 입을 열었다.


  "다음, 엔…… 상냥하게. 알았지, 오르슈팡……?"


  잠에서 덜 깬 목소리는 길게 늘어졌다. 다시 잠들었는지 그는 더 이상 아무런 말도 않았고, 숨조차 골랐다. 어설프게 그의 머리를 쓰다듬다가 화들짝 놀라 몸을 뒤틀었다.

  다음에 또, 해도 괜찮은 것인가?

  이미 잠든 그에게서 대답을 받기까진 오래 걸릴 것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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