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Stardew Valley

켄트그루

요즘 스타듀 덕질중



새벽녘의 어둠. 별무리 무수히 쏟아지는 하늘을 보며 켄트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무게로 푹 꺼졌던 시트가 위로 올라온다. 흠뻑 흘렸던 땀이 식어 몸이 차게 느껴져 오한이 들었다. 침대 옆에 있어야했던 그는 자리에 없었다.


"……하."


흐리게 흘러나오는 한숨. 손아귀에 남은 감촉에 이빨에 남아있는 살결의 감촉. 피를 봤던 것도 같은데. 혀에 비린맛이 감돌았다. 두 시간. 어쩌면 한 시간도 채 되기 전의 일이라 그런 걸지도 모른다. 엄지를 입안으로 밀어넣어 이의 표면을 문질러보다 손을 떼어냈다. 입 안이 욱신거리는 건 착각일 터였다.

째깍대는 초침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시계로 시선을 돌리면 막 4시를 넘은 시간. 슬슬 돌아가야 조디가 걱정하지 않을 테지만 도무지 돌아갈 마음이 들지 않았다. 죄책감이 가슴 언저리를 짓눌렀지만 그보다도 더욱 무겁게 느껴지는 건 죄책감보다도 가볍게 다가오는 후련함이었다.

제가 했던 짓은 고이고 고였던 것을 흘려보내는 짓에 가까웠다. 그루는 제 배출구에 가까웠다.

전쟁을 겪으면서 쌓아왔던 불안감, 초조감, 죽음을 마주했던 순간의 공포. 그런 것들을 한데 모아 쏟아내던 행위. 그럼에도 괜찮았다. 전부 받아줬으니까.


"일어났네."


와이셔츠 하나만 걸친 채 방으로 들어온 그루의 몸뚱이에는 온갖 흔적으로 가득했다. 잇자국, 목이 졸린 자국, 뺨은 부었고 옷 아래에는 더 많은 흔적이 남아있겠지. 그루는 제 시선을 눈치챈 것마냥 목덜미에 남은 흔적을 문지른다. 살점이 조금 튿어져 그 아래로 핏물이 비쳤다.


"거울을 보니까 웬 성폭행 피해자가 서있더라고."


입가에 삐뚜름한 미소를 걸친 채 그루가 그의 앞으로 걸어왔다. 앉아있는 저를 내려다보는 녹빛에 입이 다물린다. 그루는 딱히 책망하지 않았다. 책망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는 것에 가깝다.


"좋아했잖나."

"처음은 정말 싫었어."


처음은 정말이지 집요한 애무였다. 거칠지도 과격하지도 않은 부드러운.


"보통은 뒤에 벌어진 일을 더 싫어할 텐데."

"나는 아니야."


단언하는 그루에게서 시선을 떼고 침대에 몸을 뉘였다. 그루도 피곤하기는 했는지 제대로 씻지도 않은 몸으로 다시 침대 위에 오른다.


"씻으려던 것 아니었나."

"물만 마시려던 거였어. 목이 말라서 깼거든."


그렇게 소리를 질러댔으니 당연한 일이다. 눈물도 줄줄 쏟아내지 않았던가.


"안 돌아가?"

"……오늘은 신세를 지지."

"조디한테 미안해서?"


눈을 감고 몸을 돌렸다. 그루의 웃는 소리가 뒤에서 들렸다.


"변태."


부인을 내버려두고 후희를 즐기겠다니. 조용한 목소리가 퍽 비수처럼 꽂혔지만 어쩔 수 없었다. 이대로 돌아가는 건 못 할 짓이었으니. 부인에게도, 나에게도.

감정은 없으니 문제는 없다. 필사적으로 눈을 가리고 귀를 가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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