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Stardew Valley

엘리엇과 그루


책갈피 용으로 끼워놨던 그림판 엘리엇 낙서






후각을 자극하는 맛있는 냄새에 부스스 눈을 떴다. 어젯밤 내내 몸을 움직였던 탓인가. 아침이 되었음에도 일어나는 게 곤혹스러울 정도였다.

뻐근한 몸을 조금씩 주무르며 몸을 일으켰다. 밤에서 끝난게 아니라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에 빠졌으니 잘 움직이지도 않던 몸이 통증을 호소할 만하긴 했다. 최근에는 방에 틀어박혀 글만 썼으니까.


"그루?"


늘어진 긴 머리칼을 뒤로 넘기며 그에게 다가가자 방금 막 만든 것 같은 가벼운 먹을 것들이 식탁 위에 오른다. 그것으로 여기가 제 집이 아닌 그루네였음을 깨달았다. 이것저것 올라간 식탁. 탁자 위에 올려진 동그랑땡을 보다 얼굴을 양손으로 감쌌다. 귀끝이 홧홧했다.

그루가 별 생각 없이 음식을 만든 걸 안다. 제가 좋아하는 음식에 대한 주제를 꺼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가 아무 생각 없이 만든 음식이 자신이 가장 좋아한 음식이라는 건 얼마나 희미한 확률일까.

간밤 제가 늘어뜨려놓았던 커다란 셔츠를 몸에 걸친 그루는 늘어지는 소매가 불편한지 걷어올리며 식탁 위에 우유를 올려놓는다. 사랑스러워. 저도 모르게 끌어안으려 들면 그루는 한 걸음 물러선다.

맞아. 우리는 연인이 아니었다. 전날 진득하게 몸을 겹치고 흘레붙었어도, 그건 단 한순간의 욕구를 해소할 행위였을 뿐 우리는 그 어떠한 관계도 아니었다. 가슴 한 켠이 시큰거렸다고 말하면 그루는 더욱 거리를 둘까.


"먹고 더 잘 거야?"

"더 자도 돼?"

"상관 없는데 내가 나갈 거라서. 있을 거면 있다가 나가. 문은 안 잠가도 되고."


식탁 앞에 앉자 그루가 맞은 편에 앉는다. 음식들은 모두 하나같이 훌륭했고 훌륭한 식사를 멈출 수 없어서 조용한 침묵 아래 식사를 끝냈다.

그루는 식사가 끝나자 마자 욕실로 들어간다. 문틈새로 흘러나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침대에 얼굴을 묻었다. 시트에는 아직도 전날의 흔적이 가득했다. 자신이 자고 있었으니 따로 치울 수 없었던 거겠지.

코를 이불에 문지르면 희미한 체향이 묻어난다. 이곳도 저곳도 온통 그루의 흔적이었다. 코끝을 간지럽히는 향이 좋아 시트를 그러쥐었고 얼굴을 묻는다. 이런데도 아무런 관계가 아니라니. 눈가가 시큰거린다.

문득, 글이 쓰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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