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Stardew Valley

켄트와 무언가



닫힌 문 틈새로 희미하게 스미는 전등의 불빛과 사람들의 웃음소리. 여럿의 소음이 한데 뒤섞여 평화로운 분위기를 풍기는 와중에도 켄트는 차마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맡아져서는 안 될 냄새가 제 아들의 방에서 풍기고 있던 탓이다.

소리는 이다지도 평화로웠으나 그 틈어귀에는 분명한 화약의 냄새가 있다. 고막을 터뜨릴 것처럼 발포될 총성이 벌써부터 함께 들리는 것 같았다. 반사적으로 손을 움직였지만 제게 쥐어진 총은 없다. 지니고 있어야 할 무구들은 그 어느 것 하나 없다. 가지고 있는 건, 희미하게 경련하고 있는 두 손.

숨을 죽이고, 걸음을 죽이고.

무언가 떠드는 소리가 잠시간 조용해진 그때. 상대에게 틈 하나 넘기지 않기 위해 켄트는 샘의 방문을 거칠게 열어젖히곤 근원으로 달려들었다.

상대의 목을 붙잡고, 쾅.

벽과 뒤통수가 부닥치는 소리가 퍽 요란하게도 울렸다. 놀란 것처럼 몸을 굳힌 아들과 그 친구가 보였지만 그걸 신경 쓸 여력은 안타깝게도 켄트에게는 남아있지 않았다. 절로 호흡이 거칠어졌고 당장이라도 이 목을 끊어놔야 할 것 같았다. 지금 제 앞에 있는 자는 위험인물이었다. 깨끗한 거죽 아래로 쇳내와 화약의 냄새가 스며있는.

상대의 목을 쥔 손에 힘을 주면 켄트는 기이함을 느꼈다. 너무나도 얌전했다. 당장에라도 발버둥 치며 저를 떨쳐내려 할 줄 알았건만 마치 제 손에 죽겠다는 것처럼 그리도 가만히 있다.

마른침을 삼키며 켄트가 시선을 움직였다. 상대의 목에서 조금만 시선을 틀면 그 얼굴로 향한다. 선연한 녹빛. 초록의 눈동자가 켄트를 향하고 있다. 무감한 시선. 목을 졸리고 있는 사람답지 않다.


“아빠, 뭐하는 거야!”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샘이 비명을 질렀다. 세바스찬은 여전히 일련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는 것처럼 얼어있는 채다. 그리고 샘을 막은 건 남자였다. 숨이 쉬어지지 않아 붉어진 얼굴로 한 손을 들어 켄트를 떨쳐내려는 샘을 저지하고는 팔을 마저 들어 켄트의 목에 휘감는다.

그리고 아래로.

상당한 손아귀 힘에 휘청이는 몸뚱이. 목을 쥐고 있던 손이 풀리고 몸을 지탱하기 위해 벽을 짚는다. 얼굴이 남자의 가슴팍에 닿았다. 남자는 거기서 멈추지 않고 몸을 움직여 침대 위에 누웠다. 목에 감긴 팔에 켄트 또한 남자의 위에 엎어진 꼴이 됐다. 다른 사람이 보기엔 꽤 꼴사나운 모습일 게 뻔하다.

침대 아래 뻗어있는 다리와 팔을 움직여 사내에게 떨어지려 했지만, 남자가 목소리가 내리 닿는 게 조금 더 빨랐다.


“쉬이. 이봐. 여기엔 총이 없어. 난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거고.”

“……”

“돌아왔잖아.”


돌아왔잖아. 그 한 마디에 긴장감이 탁,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버석한 입술을 움직여 간신히 소리를 쥐어짜낸다.


“너는……”

“작년에 이사왔어. 좀 자.”


그 말이 사실이라는 건 아들의 반응만으로도 알 수 있는 사실이다. 그래, 전장이 아니다. 자신은 고향으로 돌아온 것이다. 이곳에는 총알이 날아다니지 않았고 어제의 전우가 다음날 시체가 되어 나타나지도 않았다. 평화였다. 온전한, 평화.

그런데. 그럴지언데도.

제가 무엇을 말하고 싶은지 아는 것처럼 사내는 목을 붙잡고 있는 팔에서 힘을 빼고 천천히 제 등을 쓸어내린다. 숨소리가 조금은 크게 들렸다. 스으……. 아주 길고 낮은 숨이었다. 듣다보면 어쩐지 긴장이 풀려가는 것 같은 그런 숨. 조곤한 말투가 내리앉는다.


“들어봐. 숨. 그리고.”

“……”

“심장 소리. 들리지? 너에게도 나는 소리잖아.”


사내는 무척이나 느린 호흡을 하며 고동 또한 일정케 울리도록. 그리하여 안정을 찾도록. 그리. 그렇게. 켄트에게 무언가를 주었다.

샘과 세바스찬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은 무언가가 지금의 둘 사이에는 있었다.


“이렇게 있어도 아무 문제 없는 곳이잖아.”

“그래…… 그렇지……”

“천천히, 그래. 심호흡해. 긴장을 풀지 않아도 돼. 소리를 먼저 귀기울이고. 응.”


켄트는 사내의 말을 거역하지 않았다. 천천히 시작되는 느린 호흡. 천천히 눈이 감겼다. 이 소리가 들린다면 불안하지 않을 것도 같아서 그랬다. 사람의 체온을 느끼는 건 또 얼마만이던가. 손아귀에 잡히는 금속이 없다는 건 또 얼마만이던가. 안정할 수 있는 곳이란 존재하는 곳이었던가.

조금씩 잠들어 고른 숨을 내쉬는 켄트를 보며 그제야 사내는 몸을 움직였다. 켄트를 침대 위에 눕히고 스스로는 몸을 일으켜 목덜미를 더듬는다. 손아귀 모양의 자국이 시붉게도 남았다.


“목 괜찮아?”

“익숙해. 좀 따갑기는 하네.”


뭐가 익숙하다는 걸까. 샘도 세바스찬도 묻지는 않았다.


“자게 두고, 다른 곳으로 갈까?”

“세바스찬 네로 가자. 어때?”

“난 상관 없어. 가자.”


세 사람은 익숙하다는 듯이 몸을 일으켰다. 달칵. 문이 조용히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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