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성/Fate

감기?

+ 기침의 의미는 무엇?

+ 기침을 하는 것은 누구?



고개를 뒤로 젖힌다. 쇼파 위에 묻힌 몸뚱아리는 감기로 인해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마른 기침이 흘렀으나 아랑곳 않은 채 그루는 허공에 시선을 던졌다. 갈라지는 목소리가 목구멍을 긁는다.


"섹스하고 싶어."

"감기 걸렸잖아."

"알게 뭐야. 하고 싶은데."


쿠 훌린의 타박에 무덤덤히 대꾸하며 마른 기침을 토해낸다. 목을 긁으며 튀어나오는 기침은 도무지 들어줄 만한 것이 못되었기 때문에 쿠 훌린은 기어코 먹지 않으려는 그루의 입을 벌려 약을 밀어넣었다. 시럽으로 된 약은 그가 굳이 삼키지 않아도 수월히 밀려 들어갔다. 수월하다해서 그루가 괴롭지 않은 것은 아니었기에 그루는 계속해 기침을 터뜨렸다.


"너무하네."

"시끄러워. 넌 하루라도 안 하는 날이 없으니 이런 날에는 좀 쉬라고."


그 나름의 친절. 그루는 그것이 못내 불편한 듯 설프게 일그러진 웃음을 머금었다. 열기로 흐드러지는 시야에 들어온 청색은 물 위로 잉크 떨어진 것마냥 시야 속에서 퍼져간다. 아, 물드는 건 싫어. 싫다구. 작은 투정. 눈을 감는다.


"나한테 섹스를 그만두라는 건 삶을 포기하라는 거랑 같아."


가무러드는 목소리. 얄궂게도 곧다. 눈이 감겨 그 너머 무엇을 보고 있는지 알 수 없기에 쿠 훌린은 입을 다물었다. 고요한 정적이 찾아오고, 그 속에서 쿠 훌린이 약을 정돈하는 소리만이 들린다. 평소였다면 이런 건 제가 할 일이 아니라며 투덜거렸을 녀석이 한치의 투덜거림도 없다.

달그락대며 유리병 부닥치는 소리. 그루는 그 소음을 자장가 삼으려는 듯 느릿이 숨을 내쉬며 뻗쳐지는 수마에 몸을 맡기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막은 건 고요했던 쿠 훌린의 목소리.


"섹스가 네 삶이냐?"

"으응, ……섹스라기보다는 쾌락일까. 쾌락은 내 인생의 구십퍼쯤 되지."

"나머지 십퍼는?"


그루는 오래간 입을 열지 않았다. 색색대는 숨소리는 이지러져 있어 잠들지 않았음을 안다. 쿠 훌린은 그루가 누워있는 소파의 맞은 편에 앉았다. 꺼지는 소파. 푹신함에 분명한 소파가 마치 가시방석 같았다. 바늘이 엉덩이를 찌르는 것만 같은 감촉. 인상을 찌푸리며 등을 기댄다. 육신을 찌르는 가시들이 내부까지 이어진다. 쿠 훌린은 다시 한 번 물었다.


"……나머지 십퍼는?"

"……"


가늘게 떠진 눈. 가운데 탁자 하나 없어 여실히 보이는 시선. 마치 정말 알고 싶냐는 듯이 되묻는 것 같은 얼굴에 쿠 훌린은 마른 기침을 토했다. 감기 걸린 그루도 아닌데 목구멍이 소리에 긁힌다. 그루는 그런 쿠 훌린을 보며 미소했다. 그의 시선마냥 그 웃음은 이지러져 있었다. 그림으로 그려져 물을 뿌리면 흘러버릴 것만 같은 웃음이 못내 불편했다. 배려하지 않을 거라면 아예 하지 말라고. 노리는 건지, 아닌지 알 수 없었으나 그루의 어설픈 배려는 좀스런 독이었다.


"자는 거랑 먹는 거."


감기 탓에 그 시야는 쿠 훌린을 제대로 쫓지 못하고 있었으나 뱉어낸 말만은 확실하게 깊은 곳을 찌르고 있었다. 그렇기에 그는 못내 답답한 표정을 지었다. 아무런 의미도 가지지 않고 찌른다. 겉 껍데기에 자꾸만 잔상을 새긴다. 덧그리는 정도라면 지워버리면 될 텐데, 상처는 낫고 낫게 해도 자꾸만 흉이지고 고름이 진다. 의미 없었다. 없다는 걸 아는데, 왜.


"……사람과의 관계는?"


자신은 입을 열어 질문하고 있나?


"있을 리가 없잖아."


명쾌할 정도로 빠른 답. 다시금 고요한 침묵. 쿠 훌린은 침묵했고, 그루도 침묵했다. 고요한 공간에는 아무런 소리조차 남지 않았다. 감기로 얼굴이 붉게 물든 채 그는 쿠 훌린을 가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섹스할 적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

"서번트는 안 물어봐?"

"됐다."


소파에 앉아있던 쿠 훌린이 몸을 일으켰다. 녀석은 원래 이런 녀석이었어. 스스로를 자위하며 고개를 턴다. 털어내도 미련이 자꾸만 들러붙는다. 서번트와 마스터. 딱 그 정도의 관계만 되면 좋을 텐데 이상케도 감정이 들러붙어 막는다. 좋은 여자와 인연이 없다 싶더니, 좋지 못한 남자와 자꾸만 인연이 붙는가, 감정이 붙는가.


"예상 외의 답이 돌아갈 지도 모르잖아."

"어느 쪽을 들어도 불편할 것 같아서 말야."

"그래?"


그루는 고개를 갸웃였다. 시선은 쿠 훌린을 쫓지 못했으나 선명한 푸름은 쫓을 수 있었다. 그 시선은 쿠 훌린을 진득하게 좇았으며, 쿠 훌린은 주먹을 악쥔 것으로 그 응망을 외면할 수 있었다.


"그래."


목을 긁으며 소리가 토해진다. 바닥으로 쏟아진다. 바닥에 쏟아진 대답이 진득한 미련을 안고 있었다. 대답에 미련이 채 전부 떨어지지 않았는지 목구멍이 묵직하고 답답했다. 아, 제기랄. 속으로 내뱉은 욕짓거리. 쿠 훌린은 등을 돌렸다.

목 위에 손을 얹는다. 목구멍 언저리에 붙은 것은 기침이었다. 토해낼까, 입을 벌린 순간에.


"콜록." 붙은 기침을 토해낸 건 그루였다. 


쿠 훌린이 기침 소리에 돌렸던 등을 바로했다. 그루가 샐쭉, 미소하고 있었다. 그가 바라는 것은 너무나도 명확한 것. 목소리 나오지 않아도, 벌려진 입만으로도 짓고 있는 그 미소만으로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것. 그가 바라는 것에 쿠 훌린은 굴종했다. 그것은 서번트와 마스터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다른 무엇?

쿠 훌린은 그루에게 다가가 육신을 부닥친다. 그것을 환영하듯 벌려진 팔이 그 목을 감싸고. 기어코 그루는 소리내어 웃었다.

'연성 > Fate' 카테고리의 다른 글

[쿠그루] 얀데레 드림합작  (0) 2016.07.10
안 쓸 거 같아서  (0) 2015.12.15
드림전력  (0) 2015.08.30
그런거야  (0) 2015.08.26
누구세요? 저 그런 사람 몰라요  (0) 2015.08.24

푸터바

태그

알림

이 블로그는 구글에서 제공한 크롬에 최적화 되어있고, 네이버에서 제공한 나눔글꼴이 적용되어 있습니다.

카운터

  • Today :
  • Yesterday :
  • Total :